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장치로 읽는 영화 『더 스퀘어』

영화 『더 스퀘어』는 현대 예술과 제도적 권력의 관계를 조명하는 작품으로,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장치 이론을 통해 분석할 때 더욱 뚜렷한 사회 비판적 맥락이 드러난다. 이 글은 알튀세르의 국가 이데올로기 장치 개념을 바탕으로 예술과 권력의 교묘한 결합을 드러내는 이 영화를 해석하며, 관객이 무심코 지나쳤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작동을 조명하고자 한다.

1. 『더 스퀘어』의 줄거리와 주제: 예술은 정말 자유로운가

영화 『더 스퀘어(The Square)』는 스웨덴 출신 감독 루벤 외스틀룬드가 연출한 2017년 작품으로, 현대 미술계를 배경으로 한 풍자적 드라마다. 주인공 크리스티안은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의 관장이자, 예술적 신념과 사회적 명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인물이다. 그는 새롭게 선보일 설치미술 <더 스퀘어>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신뢰’와 ‘관계’를 주제로 한 작품 세계를 홍보하지만, 실제로 그의 일상은 그 메시지와는 동떨어진 위선과 무관심으로 가득 차 있다.

작품은 현대 예술이 과연 사회적 진실에 접근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특히 예술이 제도 안에 포함될 때, 그것이 여전히 비판적이고 자율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문제다. 박물관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전시의 장소가 아니라, 특정한 계급과 담론, 권력이 유통되는 중심지로 기능하며 예술을 규범화한다. 이로써 예술은 순수한 표현의 자유라기보다는, 체제 내에서 작동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장치로 변모한다.

크리스티안의 도덕적 실천은 점차 무너지고, 예술 프로젝트는 대중의 반응을 통제하지 못한 채 스캔들로 번지게 된다. 여기서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가 예술이라 믿는 것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은 누구에 의해 정의되는가? 『더 스퀘어』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미학과 윤리, 제도와 개인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2.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장치 이론: 권력은 어떻게 일상화되는가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데올로기 이론을 정교화하며, 권력이 단순히 강제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 장치를 통해 ‘자연스럽게’ 작동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국가기구'와 '국가 이데올로기 장치(ISA)'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국가는 억압적 국가기구(RSA: Repressive State Apparatus)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SA: Ideological State Apparatus)로 구성된다. 전자는 군대, 경찰, 법원 등 물리적 강제를 통해 지배를 실현하는 반면, 후자는 교육, 가족, 종교, 대중매체, 예술과 같은 사회 구조 내에서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 예술은 여기서 단순한 표현의 장이 아닌, 특정한 세계관과 가치를 내면화시키는 도구로 작동하게 된다.

『더 스퀘어』는 이러한 알튀세르적 관점을 영화적 이미지로 구현해낸다. 박물관은 단순한 예술 전시장이 아니라, 권력과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작품 <더 스퀘어>는 '신뢰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주장하지만, 그것이 실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실현되기보다는 상징적 메시지로 소비될 뿐이다. 크리스티안이 수행하는 관리자의 역할은 예술과 제도적 권력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며, 결국 예술마저도 체제 내에서 길들여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알튀세르는 또, 인간 주체는 이미 이데올로기 속에서 호명된 존재라고 말한다. 즉, 우리는 이미 사회 구조 속에서 특정한 주체로 호출되어 있으며, 그 정체성은 개인의 자율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가 부여한 위치에 의한 것이다. 크리스티안 역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예술적 권위를 자율적으로 인식하지만, 실상은 제도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위치를 수행하는 주체에 불과하다. 영화는 이러한 알튀세르적 주체 개념을 복잡하고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3. 『더 스퀘어』의 장면 분석: 이데올로기의 미학적 재현

영화의 중반부, 크리스티안이 지하철역에서 휴대폰 절도를 당하고 이를 되찾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협박 쪽지를 돌리는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장면은 권력이 이데올로기를 통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도덕적 이상과는 반대로, 오히려 ‘관리자’로서의 지위에서 위계적 폭력을 행사하며 제도적 권력의 실체를 드러낸다.

또한 영화 후반부, 식사 중 벌어지는 '원숭이 퍼포먼스' 장면은 관객에게 극도의 불편함을 유발한다. 이 장면은 예술이 단지 실험적 자극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서, 실제 인간의 윤리와 경계에까지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퍼포먼스는 예술이 자율적이라는 환상을 무너뜨리며, 관객의 반응 자체가 이미 구조화된 권력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만든다.

여기서 알튀세르의 이론은 또 한 번 유의미하게 적용된다. 예술은 독립적인 상상력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요청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즉, ‘예술 작품’은 단지 창조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 이데올로기의 재생산 수단이라는 것이다. 『더 스퀘어』는 이러한 메타 비판을 통해 현대 예술의 자기기만을 해부하며, 미학적 장치마저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는 현실을 조명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관객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예술과 윤리, 그리고 제도적 권위 사이의 경계를 흔들며, 예술이 결코 ‘중립적인 공간’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더 스퀘어』는 알튀세르적 비평을 실천하는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

결론: 예술과 권력, 그리고 우리 안의 이데올로기

『더 스퀘어』는 예술이 체제 밖의 자유로운 목소리일 수 있다는 환상을 부정하며, 오히려 예술이 체제 내부에서 권력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루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장치 이론을 통해 이 영화를 바라볼 때, 관객은 단순한 미술계 풍자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에 내재된 권력의 작동 방식을 목격하게 된다. 박물관은 더 이상 중립적 공간이 아니며, 예술가는 더 이상 자유로운 창조자가 아니다. 예술은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복잡한 교차점에서 존재하며, 우리의 사고방식과 감정을 형성하는 또 하나의 장치다.

결국 이 영화는 예술의 자율성과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단지 예술가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소비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던져진다. 우리는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체제 내 예술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스스로를 어떤 방식으로 ‘호명’당하고 있는가? 『더 스퀘어』는 이처럼 단지 영화 한 편의 감상이 아니라, 예술과 권력,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철학적 체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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