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시선에서 본 『텐(10)』: 여성의 말하기와 주체의 형성」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텐(10)』은 이란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억압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주체의 형성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이 영화는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언어와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는 여성 주체를 탐구하며, 말하기의 행위가 어떻게 주체성을 드러내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1. 말하기의 주체로서 여성: 『텐(10)』의 카메라와 구조주의적 시선
『텐(10)』은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장면이 운전석과 조수석에 설치된 고정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다. 이러한 방식은 인물의 내면과 사회적 현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독특한 시선을 가능하게 한다. 구조주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언어와 사회적 구조 속에서 주체로 구성된다. 『텐(10)』은 바로 이 구조 속에서 여성 인물들이 어떻게 말하고, 또 어떻게 침묵하는지를 통해 주체 형성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여성 운전자는 다양한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며, 각기 다른 사회적 위치와 억압 구조를 드러낸다. 그녀는 때로는 아들과, 때로는 친구와, 또 때로는 낯선 여성들과 말하며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하고자 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말하기를 넘어선 존재의 선언이며, 억압된 현실을 전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또한, 카메라의 고정성과 반복되는 대화 구도는 구조주의적 기호 체계를 시각화한다. 반복되는 공간(차 안)과 유사한 구도는 마치 하나의 구조적 틀처럼 작용하며, 인물의 위치와 관계를 고정된 체계 속에서 드러낸다. 이는 곧, 사회 구조 속에서 고정된 여성의 자리를 상징하며, 동시에 그 구조 속에서도 말하기를 통해 자신을 구성해 나가는 주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키아로스타미는 여기서 남성 중심 사회의 억압적 구조를 직접적으로 고발하지 않지만, 인물 간의 미세한 언어의 균열을 통해 그 현실을 드러낸다. 특히 어린 아들과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권력 구조는, 언어를 습득한 이들이 어떻게 이미 사회적 질서에 내면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텐(10)』의 여성 주체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구조 안에서 말하고 행위하는 존재로서 해석된다.
2. 구조주의 언어 체계와 침묵의 정치학
『텐(10)』 속 인물들은 말을 하지만, 그 말은 종종 전달되지 않거나 무시된다. 이는 단순히 개인 간의 불화가 아니라, 언어가 구조 속에서 어떻게 제약되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구조주의 이론에서 언어는 자의적이지만 체계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텐(10)』은 이 언어 체계가 어떻게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지를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주인공 여성 운전자는 끊임없이 말하려 하지만, 상대방은 그 말을 듣지 않거나 왜곡해서 수용한다. 이때 그녀의 말은 사회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부정당하고 해체된다. 침묵은 때때로 강요된 형태로 나타나며, 여성 인물들이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는 지점에서는 그 억압의 구조가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침묵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는 침묵이 하나의 행위로 전환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인물은 거절하고, 저항하며, 구조를 깨뜨리려 한다. 구조주의는 언어 중심의 이론이지만, 『텐(10)』은 그 언어 바깥에서 존재하는 정서, 침묵, 표정, 몸짓까지도 주체 형성의 일환으로 포착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언어와 그 결여, 말과 침묵을 통해 주체가 구성되는 방식을 해체적으로 탐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이란 사회라는 맥락 안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억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여성 서사의 영화가 아닌, 구조주의 언어철학의 시각에서 인간 존재를 성찰하는 철학적 시도로 읽을 수 있다.
3. 차라는 공간: 구조 속의 자율성과 제한
『텐(10)』의 모든 장면은 차 안에서 펼쳐진다. 이 공간은 폐쇄적이면서도 동시에 이동하는 특성을 가진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차는 하나의 기호적 공간이다. 즉, 외부 세계로부터 일정 부분 차단되면서도, 사회적 현실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지 않은 중간 지점이다.
이러한 차 안이라는 공간은 여성 인물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난 공간이지만, 그 내부에서도 언어적·심리적 억압은 여전하다. 여성 운전자는 운전대를 쥐고 있지만, 그녀의 말은 늘 타인의 판단과 사회적 규범에 의해 흔들린다. 이 공간은 물리적 주체성과 사회적 무력감이 교차하는 장이다.
차 안에서의 대화는 외부의 법이나 규범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며, 오히려 그 억압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간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임에도, 가장 구조적인 억압이 노출되는 무대가 된다. 키아로스타미는 이 공간적 장치를 통해 ‘여성’이라는 존재가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경계에 머무는 존재임을 형상화한다.
결국 『텐(10)』 속 차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주의적 언어 체계와 권력 구조, 그리고 여성 주체성의 형성이 교차하는 기호적 공간이며, 이 안에서 여성은 자신만의 언어를 모색하고, 침묵과 말 사이에서 끊임없이 존재를 구축해 나간다.
결론: 구조 속에서 말하기, 그리고 주체의 회복
『텐(10)』은 단순히 여성의 삶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와 구조, 주체의 형성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현실 속 여성이라는 존재를 통해 풀어내는 실험적 영화이다. 키아로스타미는 극적인 서사나 감정의 폭발 없이, 일상적인 대화와 침묵을 통해 이란 사회의 구조를 해부한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더 이상 침묵하는 객체가 아니다. 오히려 침묵을 통해 더 큰 말하기를 준비하는 존재이며, 구조 속에서 균열을 내고 자신의 자리를 확보해 가는 주체로 등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텐(10)』은 구조주의의 언어철학, 사회적 기호체계, 권력구조의 작동방식을 탐구하면서도, 그 너머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를 형성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성찰적 작품이다.
여성 인물들의 말하기는 단순한 개인적 감정의 표출이 아닌, 사회 구조에 대한 응답이자 행위이며, 그것은 바로 주체로서의 선언이다. 『텐(10)』은 그런 면에서, 구조 속에서도 자율성과 저항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여성 주체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걸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