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2019)』 분석: 감시의 시선과 국가 권력의 이중성

레미제라블



2019년 프랑스 영화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의 고전과 동명 타이틀을 공유하지만, 현대 프랑스 사회의 민낯을 고발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감시와 통제를 통한 국가 권력의 작동 방식, 즉 판옵티시즘적 시선 속에서 억눌린 사회적 약자들의 분노와 저항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영화 속 미장센은 그 자체로 국가 폭력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며, 관객에게 깊은 문제의식을 안긴다.


1. 감시와 통제의 시선, 레미제라블의 도시풍경

2019년작 『레미제라블』은 파리 교외 몽페르메유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관광객들이 월드컵 우승의 축제를 즐기는 가운데, 영화는 이면에 숨어 있는 불균형과 긴장을 조명한다. 이곳은 다문화 공동체가 얽혀 있으며 빈곤, 실업, 차별 등이 일상화된 공간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인상 깊은 것은 경찰과 국가 기관의 "시선"이다. 이 시선은 단순한 관찰이나 관리가 아닌, 억압과 통제의 기능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미셸 푸코가 제시한 판옵티시즘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다.

감시는 항상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영화는 드론 장면과 거리 감시 카메라, 경찰차의 내부 시점 등을 통해 이러한 감시 체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아이들의 일상조차 감시되고 통제되는 모습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의 일면이다. 미장센은 이 시선을 극대화하며, 경찰이 시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통제하고, 때로는 폭력적으로 억압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벌인 행동이 국가 권력과 직접 충돌하게 되는 순간, 이 ‘시선’은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위협의 도구로 작동한다.

2. 국가 권력의 폭력화, 그 구조의 일상성

이 영화는 특정 사건의 재현이 아니다. 오히려 구조적 현실의 극사실적 표현이다. 영화 속 경찰관들은 법의 집행자라기보다는 지역의 질서를 유지하는 "힘의 관리자"로 그려진다. 그들의 언행은 종종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며,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매우 일상적으로 묘사된다. 특히 문제의 중심에 선 '스티브'는 권력의 자의성과 비정함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관객은 이러한 인물들을 통해 ‘국가’가 어떻게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즉, 민주주의와 인권을 자랑하는 프랑스 사회의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이 이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이때의 폭력은 단순한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억압으로 기능한다. ‘법’이라는 명분 아래 벌어지는 이들의 행동은, 역설적으로 무법과 다르지 않다.

미장센은 이러한 폭력의 일상성과 구조성을 더욱 강조한다. 좁은 골목, 무표정한 건물들, 군중 속 고립된 개인들은 모두 국가 권력 아래 놓인 시민의 무력감을 상징한다. 이처럼 영화는 시각적 언어를 통해 폭력의 현실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3. 아이들의 분노, 저항의 불씨가 되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아이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경찰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억압은 결국 어린 아이들조차 분노하게 만든다. 이들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억눌린 삶에 대한 존재의 항거이며 생존의 외침이다. 특히 드론을 통해 촬영된 경찰의 폭력을 공개하려는 시도는, 감시의 도구가 역으로 저항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은 판옵티시즘의 구조를 전복하는 이미지다. 감시하는 자와 감시받는 자의 위치가 뒤바뀌며, 권력의 일방성이 균열되기 시작한다. 이때 카메라는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던 시점을 아래에서 위로 바꾸며, 시선의 전복을 시각적으로 연출한다. 이는 단순한 장면 연출을 넘어서, 권력 구조의 변화를 상징하는 미장센으로 작동한다.

결국 이 영화는 아이들의 분노와 저항을 통해 희망의 실마리를 모색한다. 그러나 이 희망은 단순한 낭만적 해결이 아니라, 긴 여정의 시작이자 변화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관객은 이 장면에서 묵직한 감정을 느끼며, 현실 사회의 문제들을 다시금 성찰하게 된다.

결론: 레미제라블이 던지는 질문과 우리의 응답

『레미제라블(2019)』은 단순한 드라마도, 사건 재현도 아니다. 그것은 국가 폭력과 감시 사회가 낳은 시대의 자화상이며, 미장센과 카메라를 통해 날카롭게 현실을 해부한 사회비평적 작품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어떤 국가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아이들의 저항, 무력한 시민, 그리고 통제적 권력을 지닌 경찰까지 모두가 이 구조 속에서 부유하며 충돌한다.

한국 사회 또한 과연 이 구조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 영화는 프랑스의 이야기이지만, 그 맥락은 전 세계적이다. 특히 감시 기술이 고도화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모두 이 판옵티콘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기에 『레미제라블(2019)』은 단순한 영화 감상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된다. 이 거울 앞에서 우리는 침묵할 수도, 응답할 수도 있다. 선택은 관객의 몫이지만, 영화는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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