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 이론으로 읽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예술적 시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정적이고 감정적으로 절제된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과 유사한 구조적 특징을 통해 관객의 몰입보다는 비판적 거리두기를 유도하며 현대적 예술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1. 브레히트적 서사극의 원리와 영화적 적용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전통적인 희곡 구조와는 다르게, 관객이 극에 몰입하기보다는 극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설계된 연극 양식이다. 그는 연극을 통해 관객이 단순히 감정적으로 빠져드는 것을 경계했고, 대신 연극이 사회적 현실을 인식하고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소외 효과(Verfremdungseffekt)'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는 인물의 감정이나 사건의 흐름을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장치들을 활용함으로써 관객의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도록 유도한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이러한 브레히트적 원리를 극적으로 잘 보여준다. 영화는 인물 간의 대사 처리 방식, 정적인 카메라 워크, 비선형적 서사 구조를 통해 관객이 자연스럽게 인물의 내면에 깊이 감정이입하지 않도록 연출한다. 특히 극 중 등장하는 체홉의 『바냐 아저씨』 낭독 장면은 연극과 영화의 경계를 허물며, 메타적으로 극의 구성을 드러내는 브레히트적 장치로 작용한다. 이로써 관객은 극 속 인물들의 감정적 고통을 단순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과 사회적 맥락을 하나의 구조로 인식하게 된다.
브레히트는 서사극이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분석하고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하마구치 감독의 영화는 단순한 내면 드라마를 넘어, 현대인의 고립, 소통의 단절, 예술의 가능성 등을 구조적으로 탐색하는 하나의 실험적 장치로 해석될 수 있다. 관객은 이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흔들리기보다는, '왜 저렇게 말하는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며, 이 과정이 브레히트가 의도한 ‘깨달음의 연극’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2. 『드라이브 마이 카』 속 인물과 감정의 거리두기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등장인물들의 정서적 표현을 극도로 절제함으로써, 관객에게 감정적 동화를 허용하지 않는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는 브레히트가 말한 감정의 거리두기, 즉 소외 효과를 연상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감정을 직접 체험하기보다 관찰하고 성찰하도록 만든다. 유스케와 미사키라는 두 인물이 공유하는 침묵과 짧은 대화는 매우 제한적인 감정의 흐름만을 보여주며, 오히려 이 억제된 표현이 인물 내면의 복잡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감정의 직접적인 폭발이나 클리셰적인 대립 없이도 인물들이 겪는 고통과 상실은 장면들의 반복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유스케가 연극 리허설을 지휘하는 장면에서 배우들이 기계적으로 대사를 읽도록 지시하는 방식은 단순한 연출을 넘어, 언어와 감정 사이의 거리감을 드러내는 브레히트적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언어 그 자체의 의미를 되새기고,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생각하게 하는' 방향으로 관객을 이끈다.
또한 미사키라는 인물은 정서적으로 매우 복잡한 과거를 지니고 있지만, 이를 감정적으로 토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차분하고 무표정한 태도로 과거를 언급하며, 이로 인해 관객은 그녀의 내면을 직접 느끼기보다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인물의 감정을 단순한 공감의 대상이 아닌, 구조적 분석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결국 이 영화는 감정이입이 아닌 관찰을 요구하고, 서사보다는 구조적 분석을 유도하며, 인물의 내면을 은유와 간접적 표현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관객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브레히트적 비판성을 강화한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가 단순한 정서적 소통이 아닌, 사유와 반성을 이끄는 예술적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연극성과 메타시네마: 브레히트적 장치를 통한 현실의 반영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연극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핵심적인 내러티브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체홉의 『바냐 아저씨』는 등장인물들이 내면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고통을 인식하고 이를 연극이라는 공간에서 전시하게 하는 브레히트적 무대가 된다. 이러한 연극 장면들은 극중극 형식을 취하면서 영화 자체가 ‘연극을 바라보는 영화’로 기능하게 되고, 관객 또한 한 걸음 물러나 이중의 거리감을 갖고 인물들과 마주하게 된다.
브레히트는 무대 장치나 소품이 인공적임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냄으로써 현실과 극의 차이를 자각하게 만든다. 『드라이브 마이 카』 또한 연극 장면에서 자막을 활용한 다언어 연출, 기계적인 대사 암송, 비감정적인 톤의 연기로 관객이 장면에 몰입하기보다 거리두기를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이 메타시네마적 구성은 영화가 예술이 아니라 현실을 모사하는 방식에 대한 일종의 문제제기로 볼 수 있다.
특히 미사키가 유스케를 태우고 운전하는 장면은 일종의 '이동하는 무대' 역할을 하며, 영화의 시공간적 연속성을 해체한다. 이 차 안의 정적 공간은 극중 인물들이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드러내는 무대로 기능하며, 이는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장치처럼 현실의 고통을 직면하게 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처럼 영화 전반에 걸쳐 연극적 요소와 영화적 메타구조가 결합되면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예술이 현실을 반영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이는 단순히 감정을 공유하는 서사가 아니라, 관객이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드는 브레히트적 예술의 방식이기도 하다.
결론: 감정 너머 구조를 바라보는 시선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멀리 두고 관찰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전통적인 감정 서사에서 벗어나, 인물의 내면을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이야기의 진행을 몰입이 아니라 거리두기로 구성한다. 이는 브레히트가 주장한 서사극의 근본 정신과 맞닿아 있다. 감정을 일시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그 감정의 원인과 구조를 인식하게 하는 영화는 더 이상 감동을 주는 매체에 그치지 않는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의 수동적인 수용 태도를 깨우고, 예술이 가질 수 있는 사유적 기능을 되묻는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브레히트의 이론을 충실히 따르지는 않지만, 그의 정신을 영화적으로 계승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예술의 본질을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매우 현대적인 예술적 성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