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영화로 본 전쟁의 민낯: 『더 터틀스 캔 플라이』 리뷰와 철학적 고찰

더 터틀스 캔 플라이


『더 터틀스 캔 플라이』는 쿠르드 난민촌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존엄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이다. 이란 출신 감독 바흐만 고바디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현실의 잔혹함을 교차시키며 전쟁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 『더 터틀스 캔 플라이』의 배경과 서사 구조

영화 『더 터틀스 캔 플라이』는 이란-이라크 접경 지역의 쿠르드 난민촌을 배경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있는 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위성'이라 불리는 소년은 마을 아이들의 리더로서 위성과 안테나를 설치해 외부 소식을 듣게 해주는 동시에 지뢰 제거 작업을 조직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이 영화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어른들이 배제된 세계에서 아이들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이 마주하는 세계는 결코 아이답거나 보호받는 환경이 아니다. 이미 지뢰로 팔을 잃거나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아이들이 이 세계를 구성한다. 영화는 비교적 느린 호흡과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을 통해 서사를 펼쳐나가며, 인물들의 정서에 천천히 접근한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실제 난민촌에서 아마추어 배우들을 기용하여 사실적인 묘사를 극대화했고, 이는 영화의 몰입감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특히 '헹고'라는 소년과 그의 여동생 '아그린'의 등장 이후 이야기는 깊은 내면으로 진입한다. 이들은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품은 채 살아가며, 그 기억은 관객에게 전쟁이 가져오는 고통을 실감나게 전달한다. 헹고는 팔이 없고 말이 없으며, 아그린은 고통을 감추려 애쓰지만 눈빛 속에서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 서사 구조는 전통적인 기승전결의 구조보다는 정서적 파편들이 누적되며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장면에 가까워질수록 영화는 말보다 침묵이 많아지고, 관객은 장면 너머의 의미를 더듬게 된다.

2. 전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 순수함과 절망 사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인상 깊은 포인트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전쟁을 조망한다는 점이다. 어른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과 반응들이 아이들에겐 생존의 방식이자 일상 그 자체다. 위성은 강인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숨어 있다. 그는 라디오를 통해 외부 정보를 접하려 하고, 이를 통해 마치 어른처럼 세상을 조망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이이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아그린과 헹고 남매의 존재는 전쟁의 결과물로서의 피해자를 상징한다. 아그린은 내면에 감춰진 트라우마를 꾹꾹 눌러 담으며 살아가고, 헹고는 이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몸에 새긴 존재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아그린이 아기를 물에 빠뜨리는 장면이다. 이는 단순히 충격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절망과 체념의 상징이다. 세상은 그녀를 구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세상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고바디 감독은 이 아이들의 행동을 통해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누가 이들의 삶을 이렇게 바꿔놓았는가? 단지 전쟁이라는 단어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런 시선은 단순한 감상이나 연민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제기하게 만든다. 아이들이라는 순수한 존재를 통해 전쟁은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오며, 그들의 말 없는 행동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3. 철학적 해석: 전쟁, 상처, 그리고 인간의 존엄

『더 터틀스 캔 플라이』는 단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그 너머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상처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시도한다. 위성은 늘 사람들 앞에선 씩씩하고 당당하지만, 아그린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고, 그녀의 상처를 감지하면서도 어떻게 위로할지 모른다. 이러한 무력감은 어른이 되지 못한 존재로서의 아이의 한계를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본질적 고독을 상징한다. 헹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전쟁의 잔인함을 말해준다. 그의 눈빛과 행동은 언어보다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의 팔이 없는 모습은 단순한 신체적 결핍이 아니라, 인간성의 결핍과 상처를 드러낸다. 아그린이 마지막에 떠나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절망과 동시에 희망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녀는 떠난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끝내고자 하는 듯한 결단이다. 이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 묻는다. 전쟁은 그것을 빼앗아가지만, 아이들의 표정과 눈빛은 그것을 놓지 않으려는 마지막 저항처럼 느껴진다. 결국 이 영화는 전쟁이 인간에게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폐허뿐만 아니라, 기억과 감정, 그리고 상처 속에서도 살아남으려는 생의 의지다.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전쟁을 배경으로 하되 인간의 본질과 그 한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유도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론: 침묵 속에서 울리는 인간의 이야기

『더 터틀스 캔 플라이』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는 영화다. 아이들의 침묵은 단순한 감정의 억제가 아니라,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대면하는 방식이다. 고바디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전쟁의 본질을 직접 마주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극적인 장면이나 웅장한 배경음악 없이도 깊은 울림을 준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짜 삶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혹은 외면했던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아이들은 울고 웃으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다. 아이들이 느낀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가끔 피어나는 웃음까지 모두가 이 영화를 지탱하는 감정의 축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침묵은 오래도록 남는다. 그것은 전쟁을 다룬 영화가 주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긴 여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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